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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 가스라이팅과 인에이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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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나한테 있었다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는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신조어 '가스라이팅', '인에이블러'라는 이야기에 관하여 [앤절린 밀러] 작가가 기나긴 책으로 풀이해둔 이야기다.
 물론 나는 아직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슨, 여자 친구도 없다. 그러나 몇 년 전 사회복지사를 할 때의 경력이 남아서인지, 어린아이들을 클라이언트로 상대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었나 보다.
 도서관에 갔다가 나도 모르게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라는 책을 손에 쥐고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집에 가져올 때끼지만 하더라도 책 표지에 큰 글씨로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라고 적혀 있으니 웬 총각이 엄마들이 읽는 책을 가져간다며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막상 읽어보고 나니 내 마음은 달라졌다.
가끔 그런 때가 있다. 하루 한 권씩 책을 읽는 편이지만, 가끔 정말 좋아하는 책을 만나게 되면 단 한 페이지라도 아껴가며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유난히 이 책이 그랬다.
분량은 절대 많지 않았지만, 속에 들어있는 내용들은 절대 가볍지 않았기 때문일까. 책을 모두 읽고 표지를 덮을 때쯤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여운이 있었다.

 

인에이블러, 그리고 가스라이팅


"이 책은 한때 인에이블러(조장자)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고 본인은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의존하게끔 함으로써 의존자와 자율적으로 삶의 과업을 수행하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을 일제히 박탈하였던

작가의 자기 고백서이자 또 다른 인에이블러들을 위한 지침서이다."

 [앤절린 밀러] 작가는 스스로 인에이블러였다며 고백한다. 다만 자신의 아이에게 대했던 조장 행위에 대한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변화하는 그런 과정을 매우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조장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인에이블러'라는 단어가 아마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던 난 이미 너무나도 많은 누군가의 '인에이블러'임과 동시에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앤절린 밀러] 작가의 표현처럼 '인에이블러'들은 매우 현명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도 하며, 동시에 그들이 하는 행동은 사랑, 헌신 같은 것들로 위장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남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자신의 주변 상황들을 조종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선 의존자(특히 자신의 아이)를 계속 나약하고 힘없는 사람으로만 취급해서 절대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만들기도 한다. 소위 '가스라이팅'이라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결국 의존자는 자신의 인생을 맡겨버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당하게 자립할 힘을 잃으며 소외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인에이블러의 행위는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 syndrome)이랑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은 헌신적이고 박애적이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 자신의 주변 인물이나 애완동물을 의도적으로 병들게 만든 뒤 헌신적으로 돌본다."

 작가는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의 중반부에서 위와 같은 말을 한다. 물론, 인에이블러가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처럼 상대방을 일부러 계단에서 밀어버린다던가, 일부러 상대방을 병들게 만든다는 등의 학대를 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누군가의 심리적, 정신적 건강을 저하시키고 건강한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은 이미 조장행위로썬 뮌하우젠 증후군 못지않을 정도로 심각한 정서적 학대임은 물론, '가스라이팅'으로 간주할 수 있겠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심스럽게 내가 상대했던 클라이언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엄마로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금전적, 학습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아들은 나의 말을 전혀 듣지 않으며, 학교에서도 소외된 생활을 하는 것 같다."는 상담을 하러 온 적 있었다.
 그러나 단 2시간 만에 어머니와 아들을 상담한 결과, "어머니는 어머니가 원하는 생각, 행동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심각한 정신적 고문을 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수학 성적을 80점 이상 맞지 않으면 한 달 동안 용돈은 물론, 매 끼니 식사에 올라올 반찬은 오로지 '김치 국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나는 내가 가난하게 컸기 때문에, 절대 내 아이만큼은 가난하게 살지 않게 만들 것이다."라는 말을 하며 자신의 아이가 나아갈 진로를 이미 정해놓고 강제적으로 그 진로만 요구하는 상황을 가끔 주변 지인, 언론이나 TV를 통해 보았을 것이다.
 자녀가 자신의 요구에 따르지 않는다고 아이를 원망하거나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을 하고 협박하기도 하며, 아직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않은 아이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교묘한 조작 행위를 통해 결국 자신의 아이는 부모가 정해준 길로만 갈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결론은,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그들의 자녀는 부모가 이루지 못했던 삶을 대신 살아주는 마네킹이 되어버릴 것이며, 그들의 '부모'가 자신들이 그토록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했던 '가난'을 결국 자녀에게 물려주는 결말밖에 보지 못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인에이블러, 그들은 결코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행위를 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설령, 누군가 문득 '내가 누군가를 가스라이팅 하고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더라도, 그가 혼자서 인에이블러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
 인에이블러나 의존자 모두 자신들이 가진 비극의 이야기를 합리화하고 만다면 이미 올바르지 못한 의존-피의존 역할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의 결말 부분에서 작가는 그들에게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언한다.
 또한 그들에게 '가스라이팅' 행위를 멈출 수 있는 훈련 방법도 제시한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몇 번 케어해 본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대, 작가가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에서 제시하는 훈련들은 분명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 들었다.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만 한 것 같다. 나는 분명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행동한 것이지만,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망치고 있는 존재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가스라이팅, 인에이블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자기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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